나는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세계는 언제나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예를 들자면, 인물의 얼굴을 보여주어 그 얼굴로 못 박고 마는 영화와는 다른 것.
(사족이지만 그래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개봉되었을 때 나는 아주 슬펐다. 나는 단 한 번도 남자 주인공을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그 비슷한 풍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서관도 좋다. 도서관이 갖고 있는 오래된 책의 냄새도 좋고, 특유의 가라앉아 있는 듯한 분위기도 좋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 때로는 더러워지고 너덜해지기도 하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좋은 것이다. 도서관에 있는 책이란 그런 것이므로.
하지만 역시 빌려 읽은 책은 그 내용조차 돌려줄 때 함께 가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도서관은 오로지 그 분위기를 위해서 가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읽고 싶은 대로 책을 사대다간 생계가 위협당할지 모르는 내 얄팍한 지갑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도서관에서, 혹은 내 방에서, 가만히 소설을 읽고 있다보면 어딘가 나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모두들 앞을 향해 마구 달려나가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느긋하게 소설 따위나 읽고 있어도 되는 걸까.
현대인의 강박관념이다. 무언가 항상 해야 하는 것.
어제는 학교 후배들을 만났다. 의도해서 만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끼어서.
둘은 85년, 86년생이라고 했다.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
어쨌거나 이젠 자신보다 어린 생물에게는 관대해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게다가 후배라는 콩꺼풀이 씌이니 둘 다 귀여웠다.
둘은 영어를 위해 휴학을 한 중이었다. 그렇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뭘 하든 영어가 필요하다.
도무지 영어라고는 한 자도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일을 하려고 해도 영어 자격증이나 영어 시험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둘은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한 명은 곧 어학 연수를 간다고 한다. 음. 뭐 좋겠지.
둘에게서 조급함과 초조함이 느껴졌다. 나도 그랬다. 곧 졸업은 다가오는데 졸업 후엔 어떻게 될지.
취업하지 못 하고 낙오되는 건 아닐까. 가면 갈 수록 그런 압박감은 심해지면 심해졌지 약해지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받고 있겠지.
지금은 쉬고 있다, 라고 하니까 기겁하는 얼굴을 한다. 처음엔 경악에 가깝게 놀라더니 나중엔 동정의 눈빛을 한다. 사회 생활을 해보지 않아 그런 얼굴을 숨길 줄 모르는 거지. 우습기도 하고, 자신들은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게 보여서 재밌기도 하고.
얘기 중에 남자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OOO교수도 우리 학교 온 정도면 끝난 거죠. 하도 어이가 없어서 ㅌ언니와 나는 와하하하 웃었다. 그러자 재차 동의를 구하듯 물어온다. 우리 학교 올 정도면 이미 끝난 거 아니에요? 나는 그저 웃었다. 어이가 없으면 웃음밖에 나오지가 않더라. 뭐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있지도 않은 애교심을 발휘하며 멱살 드잡이를 할 수도 없는 거고.
그래. 나는 평생 내가 속한 집단에 애정이나 충성심 따위를 가지고 살아온 적은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학교라는 생각을 하는데. 서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못 들어도 열 손가락 안에는 드는 학교인데. 뭐 그 정도면 된 거 아닌가. 수능을 실패한 새내기들이나 할 법한 발언을 들으니 그저 우스운 것이다. 지금 네가 있는 학교가 네 맘에 영 차지 않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게 네 현실인데.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그냥 그게 네 수준인 거라고. 너는 앞으로 이 학교의 이름을 평생 등에 지고 다녀야 한다고. 이 학교를 낮춘다고 네가 올라가는 건 아니라고.
왜, 갑자기 그 애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나는 조금 느긋하게 살고 싶다. 남들이 보기엔 낙오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아등바등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 뛰기보다는 쉬엄쉬엄 남들만큼 걸으며 살란다.
아주 조금 포기하면, 아주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뛰고 있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나는 요즘, 길가에 핀 꽃도 예쁘고 꼬투리에서 튀어나온 팥의 눈도 예쁘다.




